출처: http://www.seelotus.com/gojeon/hyeon-dae/si/si-new/seong-tan-je.htm 성탄제(聖誕祭)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都市)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어두운 방 안엔(공간적 배경-시골 / 어둡고 추운 현실, 험한 세상, 시련) 바알간 숯불[할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피고,(뒤의 내 혈액과 관계를 가짐 - 따스하고 아늑한 방안의 분위기)[1행과 2행은 색채와 의미의 대조를 보임]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사그라지는, 꺼져가는) 어린 목숨(시적 자아, 서정적 자아)[나의 생명이 소멸되어가는 모습]을 지키고 계시었다[병든 나를 간호하시는 할머니]. - 앓고 있는 어린 목숨 이윽고(시간의 경과) 눈 속을(시련, 고난, 역경) 아버지가 약(산수유 열매,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이윽고'를 통해 극적인 장면 구성을 보여 주고 있다. '약'은 '산수유'로서 민간 요법에 의한 처방을 가리킨다]
아, 아버지가 눈[시련과 고난]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약 - 사랑의 증표. 시상의 핵심으로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7, 8행의 눈과 붉은 산수유 열매의 색채 대조)(말줄임표에는 '지금도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는 내용이 생략되어 있고,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을 영탄법을 통해 표현함) - 아버지의 사랑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보호받아야 할 어린 아이. 짐승으로 본능적 사랑에 의지하는 존재, 나약하고 무기력한 자기 존재 인식으로 아버지에게 마냥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어린 시절)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열을 식힐 수 있는 사랑으로 촉각적 심상, 험한 세파를 뚫고 살아오신 아버지의 체취)에 열(熱)(촉각적 심상)로 상기한(얼굴이 붉어짐) 볼[앓고 있는 나의 모습]을 말없이 부비는(비비는) 것이었다.(냉온감 대비 -본능적 행위지만, 언어를 초월한 사랑) - 어린 '나'의 감동과 믿음 이따금 뒷문을 눈(과거와 현재의 연결의 매체)이 치고 있었다.[시상의 O·L (과거의 눈-현재의 눈)-연결의 매개체]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아버지의 사랑-그리스도의 사랑(보편적 사랑과 성스러운 분위기)을 둘다 애처로운 목숨을 구원하는 행위로 보는 화자의 생각이 드러남 / 휴머니즘이 최고로 고양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과거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 과거 어느 새 나도 그 때[내가 앓던 어린 시절]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과거에서 현재로 시상이 옮겨옴, 이따금 뒷문을 - 나이를 먹었다 : 시상의 전환으로 회상에서 현실로 되돌아옴) - 어른이 된 '나' 옛 것(아버지의 헌신적 사랑과 같은 순수한 사랑 / 어린 시절의 정서와 분위기, 전통적, 한국적인 모습이나 정서 같은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삭막함과 외로움의 도시 / 밑바탕에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의 어조)[9연의 서러운의 원인이 됨]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사랑이 없고 메마른 현실)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눈'으로 과거 회상의 매체와 헌신적인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이 내리는데[과거와 대비를 통해 현실의 삭막함을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지만 어린 시절 보던 눈을 통해 현실에 대한 따뜻한 시선 역시 버리지 않고 있다] - 과거에 대한 향수 서러운 서른 살(음운의 유사성으로 묘한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킴 / 삭막한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 나의 이마에(아버지의 순수한 사랑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기 때문)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아버지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 위로, 구원을 상징)을 느끼는 것은(예전에 아버지가 눈 속을 헤치고 따온 산수유 열매와 같은 사랑),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시각적 심상, 부성애, 혈육의 정, 옛것 / 아버지의 사랑) 아직도 내 혈액(육친의 사랑이 계승되는 것으로 피는 생명, 혈육의 사랑을 상징)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삭막한 현실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이 시간을 넘어 영원한 것으로 지속됨) -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 삭막한 현재
시에서 노래되는 그리움의 대상은 연인이거나 어머니인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조금 특이하게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회상한다. 전 10연 중에서 제6연까지가 과거 회상의 부분이고 나머지 네 연이 현재의 모습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은 그의 어린 시절 어떤 심한 병을 앓았던 때를 되살려 내고 있다. 병원도 약국도 없는 시골, 눈이 많이 내리던 12월 하순 무렵이 그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다. 어린 시절의 그가 앓아 누운 방 안에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그 곁을 지켰다. 이 `바알간 숯불'과 할머니의 모습은 어둡고 추운 세계에서 그의 목숨을 지키는 연약한 정성을 암시하여 준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신다. 약이란 어두운 밤 눈을 헤치며 따 오신 산수유 열매이다. 세상이란 얼마나 넓고 어두우며 추운 것인가. 잦아들어 가던 어린 목숨은 눈 속에서 약을 구하여 돌아온 아버지의 옷자락에 뜨거운 볼을 부빈다. 어린 아들과 아버지의 이 모습에서 우리는 다른 시인들이 흔히 노래하지 않는 또 하나의 사랑을 발견한다. 여기서 시간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눈 속에서 산수유 열매를 따 오신 그때는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 모른다. 이러한 연상 속에는 성탄절의 의미를 자신의 절실한 경험과 맺어 보는 생각이 깃들이어 있다. 이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의 눈 내리는 저녁을 바라보고 있는 화자 역시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 든 어른이 되었다. 옛날과 다름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그는 불현듯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 어린 시절 눈 내리던 밤 뜨거운 볼에 와 닿았던 서느런 옷자락을 느낀다. 그것은 어쩌면 그때 아버지가 따 오신 산수유의 붉은 알알이 아직도 핏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성탄절이라면 흔히 연상되는 도시의 소란스러움 대신 어두운 밤에 내리는 눈을 통해 자연스럽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황량한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따뜻한 애정의 기억을 노래한 맑은 작품이다. [해설: 김흥규] 이해와 감상1 김종길 시의 뿌리를 이루는 것은 유가적 전통이다. 그의 특성인 절제된 감정과 시어, 명징한 이미지와 고전적 품격 등은 모두 유가적 덕목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보여주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결국 그의 이런 근본에서 자라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서른 살의 나이에 이른 화자는 눈을 매개로 하여, 어린 시절 병든 자신을 위해 눈속을 헤쳐 산수유 열매를 따 오시던 아버지를 회상하고 있다. 따라서, 그 아버지는 부모의 은덕을 효로 보답해야 한다는 효제(孝悌)의 원리를 절로 떠오르게 하는 아버지이며, 화자는 그런 아버지로 표상되는 애정 넘치는 과거의 생활상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시간은 모두 '성탄제에 가까운 밤'이다. '성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이지만, 여기서는 사전적 의미를 벗어나 시적 화자와 아버지의 새로운 만남의 의미를 조명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성탄제는 서구의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축제로서의 의미가 아닌, 한국의 전통적·복고적 정서로 전이되어,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의 정점을 보여주는 한편, 그 분위기에 싸여 가족 간의 사랑을 한 차원 상승시키고 있다.
가정(家庭)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경상도 방언으로 부엌 가까이 설치되어 주로 주방 용품을 보관하는 곳간)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이해와 감상 주제 :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삶의 고달픔과 가족에 대한 애정 이 시는 힘겨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생활인으로 돌아온 시인이 아버지로서의 고통(苦痛)을 토로하는 한편, 자식들에 대한 막중한 책임(責任) 의식을 스스로 확인하는 작품으로, 현실적 세계를 시적 대상으로 삼은 생활시로서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에서는 화자(話者)와 청자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화자는 실제의 시인과 거의 일치하며, 청자는 '강아지'라고 불린 그의 자녀들이다. 얼음판 같은 세상의 모습을 말하면서 다소 비감스러워하던 화자의 목소리는 자녀들에게 말을 건넬 때, 따뜻하게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1연은 화자의 귀가(歸家)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피곤한 육신(肉身)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화자는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문수가 각기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바라본다.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화자의 가정이 아홉 켤레의 신발 속에 함축되어 있다. 직업이 다르고 신분이 달라도, 또는 부유하건 가난하건, 그래서 그것이 현관이건 들깐이건 사람 사는 모습은 결국 똑같다. 그러므로 '지상'이라는 시어는 힘겨운 일상의 삶이라 할지라도 일단 가정으로 돌아오게 되면, 가정은 그 가족만의 하나의 행복(幸福)한 지상(地上) 세계(世界)라는 뜻이라 할 것이다. 2연에서 화자는 식구들의 신발 옆에 자신의 신을 벗어 놓는다. '눈과 얼음의 길'은 바로 화자가 살아가는 고달픈 인생길을 상징하는 것으로, 4연에서는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아홉 켤레의 신발 중에서 특히 막내둥이의 것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막내에 대한 특별한 애정(愛情)을 강조하는 것이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스스로 확인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3연의 1∼2행은 비록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온 화자이지만, 자녀 앞에서는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3∼5행은 고달프게 살아가는 화자의 가정을 의미한다. '연민한 삶의 길이여'라는 6행은 화자가 삶에 대해 느끼는 힘겨움을 직설적으로 토로한 것이며, 7행에서뿐 아니라 작품 전편에 등장하는 '내 신발은 십구 문 반'이라는 구절은 막내의 '육 문 삼'과 대비되어 화자가 자신의 신발을 거듭 의식하면서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4연은 화자가 방에 들어가며 자식들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 내가 왔다 / 아버지가 왔다'는 표현은 현실 생활에 시달리는 화자의 고달픈 삶을 극명히 보여 주는 것이며, 비록 고달프게 살아가는 가정이지만,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 존재한다'는 사실을 '십구 문 반'이라는 신발 크기로 강조하는 것은 그 큰 신발 속에 아홉 명의 자식들의 미래를 담고 있다는,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무를 강조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시는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자식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아버지들의 모습을 화자의 가정(家庭)을 통해 잘 보여 주는 작품(作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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